제4화 아직 솔로이신가요?
오윤희는 머릿속이 하얀 백지장이 되어버렸다.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남욱이 그들을 향해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스타일 마인드에서 오셨죠? 앉으세요.”
“윤희 언니, 멍하니 서서 뭐 하고 있어요?”
옆에 있던 소미가 물어서야 정신을 차린 오윤희는 동료들과 함께 소파에 앉았다. 남욱은 천천히 휠체어를 운전해 그들에게 다가왔다. 소미가 잔뜩 들뜬 말투로 물었다.
“남 대표님, 이제 시작할까요?”
“그러시죠.”
남욱은 여전히 오윤희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담담한 표정으로 응하고 있었다. 마치 서로 모르는 사이라는 듯이.
이런 소원한 태도에 오윤희는 눈앞에 남자가 그냥 자신의 남편 남욱과 닮은 사람인 건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 남 대표님, 워낙 베일에 싸인 분이셔서 사람들이 아직 대표님 성함도 모르고 있습니다.”
소미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성함을 여쭤도 될까요?”
“남욱입니다.”
짧고 간결한 대답이 남자의 얇은 입술에서 흘러나오자, 오윤희는 마지막 남은 기대마저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남욱.
그는 진짜 남욱이었다.
그녀의 남편 남욱.
“남욱, 정말 좋은 이름이네요.”
정 선배가 공손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대표님께 몇 가지 질문을 여쭈려고 합니다.”
말을 마친 정 선배는 고개를 돌려 아직도 넋을 놓고 남욱을 바라보고 있는 오윤희를 쳐다보았다. 다급해진 그녀가 몰래 오윤희의 팔을 꼬집었다.
“아.”
갑자기 느껴진 통증에 오윤희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오늘 인터뷰는 그녀가 진행하고 소미와 정 선배가 필사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정 선배의 책망 어린 눈빛을 마주한 오윤희는 급기야 복잡해진 마음을 정리하고 프로페셔널한 태도로 질문을 시작했다.
“남 대표님, 대표님은 S시티 사람인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당황한 오윤희와는 다르게 남욱은 시종일관 침착한 태도로 임하고 있었다.
“S시티에서 태어난 건 맞지만,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자랐어요.”
그의 대답에 오윤희는 이 상황이 갑자기 우습게 느껴졌다. 맞은편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사람은 분명 자신의 남편인데, 자신은 그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일 때문에 방문했는지라 빠르게 복잡한 생각들을 떨쳐버리고 준비한 질문을 이어갔다.
인터뷰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남욱은 냉담하긴 했지만 인터뷰에 협조적으로 응했다. 소문에 인정사정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오윤희도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자신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점차 인터뷰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선이 다음 문제에 닿았을 때 그녀는 갑자기 입을 다물어버렸고, 사무실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윤희 언니, 뭐 해요?”
눈치 빠른 소미가 오윤희를 살짝 밀쳤다. 그제야 오윤희는 정신을 차리고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남 대표님. 지극히 사적인 문제이긴 한데, 많은 여성 독자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요.”
오윤희는 복잡한 심경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사전에 준비한 원고대로 또박또박 질문을 이어갔다.
“대표님은… 아직 솔로이신가요?”
오윤희는 혀를 깨물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슨 이런 허튼소리가 다 있어? 남욱이 솔로인지 아닌지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잖아?’
하지만 소미와 정 선배가 옆에 있어서 안 물을 수도 없었다.
물음을 마친 오윤희는 긴장한 기색으로 남욱의 눈치를 살폈다. 착각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으나, 남욱의 한 점 동요 없이 고요한 눈빛에 희미한 웃음기가 스쳤다.
하지만 그가 너무 빠르게 표정을 바꾼 탓에 오윤희는 분명 자신의 착각이었다고 생각했다.
“이 문제는….”
남욱이 천천히 입을 열더니 야릇한 말투로 되물었다.
“기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