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결혼이 이렇게 간단한 거였어?
한 시간 뒤, 오윤희는 혼인신고서 한 장을 손에 들고 구청을 나오고 있었다.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정신이 몽롱했다. 그녀는 이렇게 갑자기 누군가의 아내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것도 우연히 만난 남자랑.
오윤희는 고개를 숙여 혼인신고서를 바라보았다. 사진 속 남녀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있었는데, 남자는 담담히 웃고 있는 반면에 그녀는 수심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진 아래쪽에 두 사람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황당한 건, 남편 되는 사람의 이름을 혼인신고서를 통해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욱.
간결하면서도 강직해 보이는 이름이었다. 이 남자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오윤희?”
남자 역시 혼인신고서를 바라보며 천천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매력적인 허스키한 목소리가 깃털처럼 오윤희의 마음을 간지럽혔다.
잠시 넋이 나가 있는 그녀 앞에 가늘고 긴 손가락이 갑자기 나타났다. 손가락 사이에 카드가 한 장 끼워져 있었다.
“오윤희 씨, 여자들은 모두 결혼식이라든가 결혼반지에 로망을 가지고 있다는 걸 잘 알아요. 하지만 죄송하게도 제가 이런 걸 신경 쓸 시간이 없어서요. 반지를 좋아하시면 오윤희 씨 스스로 골라요.”
오윤희는 고개를 들어 남자의 흑요석같이 검은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쳤다.
“괜찮아요.”
그녀가 연신 손을 흔들었다.
“저 그런 거 신경 쓰지 않아요.”
그녀는 진작에 로맨틱을 꿈꿀 나이가 지났다. 가장 중요한 건, 비록 명의상 남편이긴 하지만 빚지기는 싫었다.
“반지는 필요해요.”
남욱은 담담히 얘기하며 손을 내밀어 오윤희의 손을 잡더니 카드를 손에 쥐여 주었다. 피부가 맞닿은 순간 남자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오윤희는 멍하니 그가 하는 행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요.”
어쨌든 ‘신혼부부’이니까. 오윤희는 이런 일로 남자의 호의를 거절할 수도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카드를 건네받았다.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집까지 못 바래다 드려요.”
남욱은 여전히 담담한 말투였다.
“네.”
처음부터 상대방이 자신을 진짜 아내처럼 보살필 거라 기대도 하지 않았던 오윤희는 서운한 감정도 들지 않았다.
“아 참, 우리 집 주소 말인데요.”
남욱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이따가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시간 괜찮을 때 집으로 들어오면 돼요.”
아까 혼인신고를 할 때 이미 연락처를 교환한 두 사람이었다.
“급한 일 아니니까 천천히 해도 돼요.”
오윤희가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비록 결혼을 했으니 한집에서 살아야 하는 건 맞지만, 그녀는 아직 낯선 남자랑 한 지붕 아래 같이 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녀의 말투에서 강한 거부감이 느껴졌던 건지, 남욱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윤희는 어색해서 미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남욱은 말없이 휠체어의 전동버튼을 눌러 방향을 틀었다.
“다른 일 없으면 저 먼저 가볼게요.”
“그래요.”
눈길로 검은색 승용차에 타는 그를 배웅한 뒤, 오윤희도 자리를 떴다.
그녀는 곧장 회사 인사팀에 전화를 걸어 며칠 뒤에 S시티 호적으로 옮길 거라고 보고했다. 회사에 현지 의료보험을 신청하고 가족 보험까지 함께 가입 절차를 마치고 나서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충동적으로 한 결혼이었지만,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엄마의 치료비용이 해결되었다.
오윤희는 스타일 마인드 잡지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회사에 도착했을 때 아직 오후 인터뷰 약속 시각까지는 여유가 조금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남욱이 준 카드를 들고 근처의 백화점으로 가서 결혼반지 한 쌍을 샀다. 사무실로 돌아온 그녀가 인터뷰에 쓸 자료들을 읽고 있는데 동료 소미가 의자를 끌고 가까이 다가오더니 눈빛을 빛냈다.
“윤희 언니, 이 반지 어떻게 된 거예요?”
“참 눈썰미도 좋아.”
오윤희도 숨길 마음이 없었다. 회사 인사팀에서 그녀가 호적을 옮긴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마당에 회사에 소문이 나는 건 시간문제였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가 그녀의 결혼을 두고 수군거릴 것이다.
“나 결혼했어.”
“윤희 언니, 축하해요.”
소미는 눈길을 다시 그녀의 결혼반지로 돌리더니 물었다.
“이거 형부가 선물한 거예요? 다이아몬드가 좀 작네요? 얼마예요?”
“삼십만 원.”
그녀는 남욱의 집안 형편에 대해서 몰랐기에 가장 싸고 심플한 디자인으로 골랐다.
순간 소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윤희 언니, 이러면 안 되죠.”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결혼반지는 결혼의 상징이잖아요. 결혼반지 하나 좋은 거로 준비 안 한 남자를 어떻게 믿고 살아요?”
“형편에 맞춰 사는 거지.”
오윤희가 담담히 대꾸했다. 소미가 동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남편의 경제 형편이 몹시 어렵다고 오해한 듯했다.
“됐어, 이 얘기는 이제 그만.”
이 얘기를 길게 하고 싶지 않았던 오윤희가 화제를 돌렸다.
“오후 인터뷰는 다 준비됐어?”
“완벽하게 준비했죠!”
오윤희의 말에 소미가 언제 그랬냐 싶게 흥분한 표정으로 답했다.
“윤희 언니, 저 오늘 예뻐요?”
그제야 오윤희는 소미가 평소 잘 안 입던 핑크빛의 짧은 원피스를 입은 것을 발견했다. 머리도 많이 신경 쓴 것 같았다.
“예쁘네.”
오윤희의 진심 어린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소미가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빛내며 물었다.
“그럼 윤희 언니, 성욱 그룹 대표님께서 저한테 반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