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그녀가 돌아왔다
윤혜성은 눈을 번쩍 떴다.
그녀는 기억 속과 똑같은 익숙한 방을 둘러보며 시간을 거슬러 돌아온 것을 실감 나게 느꼈다.
침대 옆 탁자에서 휴대폰을 꺼내 날짜를 확인해 보니 그날이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이때,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려 정적을 깼다.
문을 열어보니 잘생긴 남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왜 전화를 안 받아?”
그는 그녀를 보자마자 질책했다. 윤혜성은 고개를 살짝 돌렸다.
“받기 싫어서.”
그녀의 둘째 오빠 김성훈이다. 그녀의 현 매니저이기도 하다.
김성훈은 이런 대답을 들을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얼어붙었다.
그는 눈썹을 찡그리며 인내심을 잃은 듯 말했다.
“그만해라.”
“대사 좀 바꿔라, 뭘 자꾸 그만하래, 지겹다, 진짜.”
이 집에 돌아온 이후 김 씨 가족 사람들, 어머니와 다섯 오빠 모두 그녀에게 이 말을 해왔다.
그만하라고.
“서윤이가 그 예능에 나가고 싶다잖아, 그거 하나 양보 못 해줘? 고작 이런 일 때문에 온 집안 식구들이 네 눈치를 봐야겠어?”
“이 기회는 내가 어렵게 구해온 거야.”
윤혜성은 냉정하게 말을 이어갔다.
“내 눈치 보는 건 내 알 바 아니잖아?”
그녀는 어릴 때부터 가족과 함께 자란 사이가 아니다.
4살 때, 다섯째 오빠가 데리고 나갔다가 그녀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후 가족은 그녀와 비슷한 또래 어린 소녀를 입양했고 그녀에게 김서윤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1년 전, 김 씨 가족은 친딸을 찾았고 그녀를 집으로 데려왔지만 친딸보다 입양한 서윤이를 더 이뻐했다.
무엇을 하든 그녀가 하면 장난이고 서윤이가 하면 괜찮다.
전에 윤혜성은 자신의 노력과 천부적인 능력으로 1년 만에 투명한 배역에서 유명인으로 거듭났다.
김 씨 가족은 그녀를 데려간 후, 직접 보살피겠다는 핑계를 대고 그녀 전 소속사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이렇게 윤혜성은 킴앤씨 엔터로 편입되었고 매니저도 자연스럽게 김성훈이 맡게 되었다.
음악을 배우던 김서윤도 갑자기 연예계에 관심이 생겨 같은 소속사와 같은 매니저 밑에서 함께 하게 되었다.
1년 동안, 김서윤은 엄청난 배경으로 좋은 프로그램에만 나가 자연스레 유명인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윤혜성은 김서윤이 거절한 프로그램에만 나갈 수 있었다.
지난달, 우연히 감독 아내의 생명을 구해 화제를 모았던 새 버라이어티 쇼에 게스트로 초대되었다.
김서윤도 이 예능에 나가고 싶어 했지만 게스트는 이미 정해져 있었기에 김서윤의 현 유명치로는 단독으로 추가되기 힘들었다. 그래서 김성훈과 집안사람들은 윤혜성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그녀는 알았다. 김서윤이 일부러 자신만의 기회를 빼앗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제안을 거절했지만 가족은 그녀를 비난했다.
어젯밤, 끝까지 버티고 양보하지 않은 그녀는 끝끝내 방안으로 돌아왔다.
김성훈이 나타난 지금, 이 타이밍도 실은 윤혜성을 설득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더 좋은 프로그램에 나갈 수 있게 마련해 줄게. 그러니까 이젠 그만 양보해 주라.”
“못 해, 오빠 귀한 동생보고 그 프로그램에 나가라고 하면 되겠네.”
윤혜성은 피식 웃으며 방문을 닫아 버렸다.
김성훈은 닫힌 방문을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집에 돌아온 후 자신에게 이렇게 무례하게 대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넌 애가 대체 왜 이러니?”
그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렸지만, 윤혜성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는 그제야 자리를 떴다.
문을 닫은 윤혜성의 마음은 호수처럼 잔잔했다.
전생의 그녀는 가족의 애정을 갈망했기에 가족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었다. 약도 지어주고, 마사지도 해주고, 함께 연기 연습도 하고 무용도 연습했다.
그러나 납치된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 가족이라는 사람들은 윤혜성보다 김서윤을 먼저 구했고 친딸인 그녀는 결국 납치범에 의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죽음을 맞이한 그 순간, 그녀는 가족이라는 사람들에게 매우 실망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죽고 난 그녀는 시스템과 얽매이게 되었다. 여러 세계로 이동해 퀘스트를 수행했고 보상으로 생명력을 얻었으며 끝끝내 다시 자신의 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윤혜성은 오른손을 뻗어 손바닥을 보았다.
얼마 남지 않은 생명력, 그녀에게 허락된 시간은 1년뿐이다.
시스템은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생명의 연장을 받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에게 호감을 얻어야 한다고 힌트를 주었다.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또는 그녀가 누군가를 도와 많은 사람의 호감을 얻을수록 생명력을 추가로 연장받을 수 있다.
신앙심으로 생명력을 바꾸는 셈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
생명력을 연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그녀는 지금 김 씨 가족 사람들과 싸울 시간이 없다.
그녀는 급히 옷을 차려입고 자신이 이 집에 가져온 물건들을 모두 캐리어에 넣었다. 집사가 사준 물건은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
그녀는 장부를 꺼내 이 집에서 사용한 비용을 계산했다.
그러고는 아버지가 줬었던, 하지만 한 푼도 쓰지 않은 은행 카드를 꺼냈다.
모든 준비를 마친 그녀는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거실에 앉아 있던 가족들은 캐리어를 들고 내려오는 윤혜성을 보며 모두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 서주희는 윤혜성을 째려보며 질책했다.
“또 무슨 소란을 피우려는 거니? 네가 온 이후로 집안이 조용한 날이 없구나.”
“전 돌아오고 싶다고 한 적 없어요, 저를 직접 데리러 오셨잖아요? 그리고 제가 무슨 소란을 피웠다고 이러세요? 제가 어렵게 구해온 이 소중한 기회를 양보하지 않은 게 소란을 피운 건가요? 그렇다면 김서윤도 지금 도가 지난 요구를 하는 거 아닌가요?”
서주희는 윤혜성의 반박을 예상하지 못한 듯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서윤이는 그 예능을 좋아할 뿐이야. 넌 김 씨가문의 딸이지만 서윤이는 그 신분을 잃었잖니, 네가 양보해 주는 것도 당연한 거 아니야? 왜 자꾸 서윤이랑 싸우려는 거니?”
셋째 오빠 김하준도 한 마디 보탰다.
“너 서윤이 싫어하지? 맨날 서윤이한테만 화풀이하고 말이야.”
넷째 김지호도 불쾌한 듯 말했다.
“그냥 조용히 김 씨 아가씨 역할이나 할 것이지 왜 자꾸 이런 소란을 피우는 거니?”
전생의 그녀였다면 매우 슬펐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달랐다.
“우선, 전 서윤이의 것을 빼앗은 적 없어요. 걔가 나 대신 김 씨에서 안락한 생활을 누렸죠. 그리고, 당신네가 절 잃어버린 거잖아요, 양심이란 게 있기는 하나요? 저한테 빚진 사람은 당신들이에요. 전 아무에게도 빚진 적 없어요, 그러니 당연히 갚을 필요도 없죠.”
그녀는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그 귀한 김 씨 아가씨네 자리는 다시 걔한테 돌려줄게요, 전 하라 해도 하기 싫으니까.”
서주희는 윤혜성이 이런 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듯 깜짝 놀랐다.
“뭐라고?”
“김 씨 가족과 연을 끊겠다고요. 앞으로 만나도 모르는 척 지나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식구들을 찬찬히 둘러봤다.
“당신네가 그토록 귀하게 여기는 양녀에게 아가씨 자리를 주겠다고요. 맘 편하시겠어요, 다시는 김서윤의 물건을 뺏으려는 사람이 없을 테니.”